서울대병원에서 나팔관 조영술을 하고,
결과를 들으러 간 날-
둘째를 포기하는게 좋겠다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그 앞에서 엉엉 울었더랬다.
사실 둘째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했던 교수님의 말이 서운해서라기보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이는 쪼그라든 내 자궁의 모습을 보니
왜인지 내 모습같았다.
그래서 너무 서럽고, 속상했다.
조영술을 하던 날, 조영제가 계솔 줄줄 흘러나오며
"cervis"가 두개야? 라고 했던 시술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경부가 두개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조영제는 자궁에 고루 퍼지지 못했던 듯하다.
교수님은, 다른 병원에 가도 돈 낭비니 갈 필요없고,
마음을 접으라고 단호히 말했고-
나도 어쩌면 그 말이 듣고싶었을까?
진료실 문을 나와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우리 둘째 못가질거 같데 깨끗하게 마음 접고 룽띠 잘 키우며 살자"
- "다른 병원도 가보면 어때? 그 교수 의견만 들은거잖아"
"내가 봐도 조영술 결과 너무 안좋아보여, 그리고 서울대에서 가지지말라고 하는데 어디를 가보겠어"
-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또 이 망할놈의 둘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카페를 검색해보면 자궁 유착이 심했던 분들도 유착박리술을 [여러번] 진행하고
시험관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꾸 희망회로를 돌리는 나새끼...
-
남편에게 차병원에 가서 한번 더 의견을 묻고싶다고 했더니 동의했다.
-
근데 또 시작되는 문제는 의사선택!
원래 나는 친구가 첫째 둘째 모두 시험관을 맡겼던 여성 교수님을 추천받았었고,
룽띠를 자연임신 하기 전에 그 분에게 상담을 받았었는데
뭐랄까- 좀 더 나랑 잘 맞는 교수님을 찾고싶었다.
첫째 때는, 의사들이 조금 퉁명스럽고 딱딱하게 말하고,
말 잘라먹고 공감능력 1도 없고 그래도 전혀 상처받지 않고,
의술만 뛰어나면 괜찮다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진료 후 교수 성향 가지고 컴플레인 하는 환자들이 이해가 안갔었는데-
이제는 180도 바뀌어버렸다.
같은 말이라도 다정하게, 섬세하게 해주고
환자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해주고,
희망 회로도 적절히 돌려주고,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는 그런 교수님을 찾고싶었다 간절히-
(내가 이렇게 바뀔줄이야)
-
진짜 병원 홈페이지 들어가서 사진만 보고 선택하는건 너무 겉핥기 식인데다,
실물은 사진이랑 다른 경우가 의사들도 많아서 ㅋㅋ
고민하다 카페에 나와 같은 케이스의 환자들이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아 묻기도 하고
요즘 빠져있는 관종언니 유튜브에 나온 교수님도 써치해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쪽지도 보내고
정말 일주일동안 교수님을 선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서울역 차에 ㄱㅇㅅ 교수님과 강남차의 이희준 교수님으로 좁혀졌는데,
ㄱㅇㅅ 교수님은 당장 예약이 안되었고
이희준 교수님은 가능했다.
사실 이희준 교수님은 후기가 많지 않았지만,
홈페이지 주요 전공에 '자궁내막증' '난소기능저하' 두 가지가 보여서 선택하게 됐다.
지금 내 가장 큰 문제는 '자궁내막유착'과 '난저'이므로..
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도 한 몫했다.
내가 룽띠를 서울대에서 출산했고 그 곳에서 과다출혈로 입원했고
그 곳에서 둘째 임신을 포기하라는 권유를 들었기에,
서울대 교수님들을 잘 아는 분이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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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가 너무 없어서 걱정하며 반신반의하고 예약한 이희준 교수님
나는 친정엄마의 영향으로(?)
어떤 병원에가던 시니어급 혹은 원장급 연세가 지긋하신 의사선생님들을 선택해왔기에 (오래기다리더라도)
그리고 연륜과 경험의 힘을 믿기에
너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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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진료
첫 진료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해주는 기분으로 병원에 갔다.
오전에 계속 수업이 있어서 제일 마지막 타임으로 예약해갔는데
금요일이라 차가 너무 막히는 바람에 일찍 출발했음에도 예약시간이 지나서 도착했다.
서울대에서 자궁조영술 결과를 들고 갔는데,
영상등록기에 영상을 먼저 등록해뒀으면 빨랐을 것을 바보처럼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간호사샘이 나와서 이제 곧 내 차례라고 하길래
영상을 가져왔다고 하니
미리 등록 안하셨냐고 오늘 진료보고 가기전에 하고가라고 해서
이 결과가 중요해서 꼭 보여드리고 상담받고 싶다 말했더니 다시 들어가 교수님에게 물어봐줬고,
다행히 기다릴테니 내려가서 영상을 등록하고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 나는 영상 등록이 그렇게 오래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ㅠㅠ
오후 4시반 예약이었는데,
영상을 등록하고 나니 5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정말 병원 예약시간은 칼같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너무 죄송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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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등록하고, 진료에서 만난 이희준 교수님의 첫 느낌은 정말 푸근하고 좋았다.
공감능력 100프로에 여유있는 대화와 설명,
긍정적인 답변까지...
정말 큰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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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생 때 목감기를 정말 독하게 앓아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침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찾아간 이비인후과에서 ( 아기때부터 다니던 병원 )
의사선생님이 다 죽어가는 나를 보고 양손으로 목을 감싸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어쩌면 난 평생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의료진의 이런 친절이 한 환자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음을,
부디 알아주시길 바란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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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조영술 결과를 보고 잠시 당황하시는 듯 말을 더듬으셨지만ㅋㅋ
결코 나에게 임신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다.
그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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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약속은 생리가 시작하면 2-3일째,
초음파를 직접 봐주시고 그 다음 스텝을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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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찾아온 생리에서,
지금까지 그 어떤 때보다 빨갛고 선명한 혈이 더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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