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대 응급실에 다시 가야했다.
펑펑 울며 남편에게 전화했고 남편은 급히 회사에서 차병원으로 뛰어왔다.
아빠도 오셨고 엄마와 나, 넷은 조리원에 들러 짐을 챙겨 나왔다. 원장님이 입원하게 되면 쓰라고 메델라 유축기를 빌려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조리원에서 나서는데, 아무래도 오랫동안 꿀봄이를 못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아기,, 엄마 금방 올게,,
-
수차례의 회음부 봉합으로 조리원 퇴소일이 다 되어 가는데도 도넛 방석 없이는 차에 앉을 수가 없었다.
-
크리스마스 이브, 차는 엄청나게 막혔고 나는 열이 끓는 몸을 겨우 추스리며 버텼다.
응급실에 도착해 CT촬영 혈액균배양검사 소변검사를 진행했다.
혈액균배양검사 주사가 많이 아팠다.
-
젖이 차 돌덩이가 돼 가고 있었다. 가슴에 붙여 둔 양배추 잎들은 찜기에서 쪄진 것 마냥 푹 익어버렸다.
-
어느 응급실이나 그렇듯 절차는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CT 결과와 혈액검사 결과가 너무너무 궁금했다.
한참을 앉아있다보니 분만장에서 초음파를 보러 오라고 했단다. 반가웠다.
출산 후 이 지경이 됐으니 산부인과 검진을 빨리 받아보고 싶었다.
-
응급실에서 분만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추웠다.
응급실에서 갈아입은 얇은 환자복 한 장이 전부였기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뒤늦게 엄마가 온 가족 패딩을 모아다 덮어줬지만 몸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 때 산후풍이 온 것 같다..
-
출산할 때 나를 맡았던 레지던트 샘들이 내 얼굴을 보고 핏기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자궁 내진을 하고 초음파를 했다. 너무 아팠다.
아무래도 자궁 내 감염인 것 같다는 (?) 이야기를 듣고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다.
인 것 같은건 뭐지.. CT 결과는 어떤지 물어봤더니 CT로 확실한건 알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고,
초음파로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나중에 알고 보니 CT 결과상 복부의 다른 문제가 없었고, 출산 후 생긴 증상이며 염증수치가 높으므로 자궁내막염을 의심했다고 한다.
-
계획대로라면 크리스마스 날이 조리원 퇴소일이었다.
우리 아기와 함께 보낼거라 임신 기간부터 정말 설렜었다.
출산하기 며칠 전 남편에게 내가 조리원에 있는 사이에 집에다 트리를 만들어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
-
결국 난 아기를 조리원에 두고 입원하게 됐다.
응급실에서 입원하기까지 8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내 환자복 앞섬은 흘러내린 모유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병실 배정받자마자 유축기를 꺼내 유축했다. 눈물이 났다.
유축을 하니 조리원에 있는 내 아기가 너무나 보고싶었다.
-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한다는 항생제 두가지를 번갈아 맞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마다 혈액을 뽑아야 했고 혈관이 얇은데다 피부가 약해 라인을 잡으면 채 이틀이 안돼 발갛게 변하고 통증이 심했다.
-
3일간 항생제를 맞았지만 염증수치에 변화가 없어 더 강력한 항생제로 바꿨다.
더불어 혈소판 수치가 너무 높아져 감염내과와 혈액종양내과 교수님들이 협진해주셨다.
병실로 찾아와 여러가지 문진을 하시고 검사를 하셨는데 내가 봐도 다른덴 전혀 이상이 없었다.
-
가장 힘든건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열과 오한, 그 와중에 찾아오는 회음부 통증과 계속해서 나오는 오로..
심한 빈혈로 인한 무기력감과 어지러움..
3시간만 되면 굳어오는 가슴, 아기 생각을 하면 가슴 전체가 지잉 하면서 젖이도는 느낌
그럼에도 안을 수 없는 우리 아기..
조리원에서부터 이어지는 지옥같은 나날들에 하루에도 몇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
아침 9시에서 10시 모자동실 시간엔 친정엄마가, 저녁 8시에서 9시 모자동실 시간엔 남편이 조리원에 들러 아기를 돌봤다.
병실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저녁 시간에 남편이 해주는 페이스타임으로 아기 얼굴을 보고 또 울었다.
입맛이 전혀 없고 밥알이 모래같았다.
그럼에도 먹어야했다. 빨리 퇴원하려면, 나으려면 먹어야했다 그게 정말 고역이었다.
-
빈혈수치가 좋아지지 않아 결국 다시 수혈을 받기로 했다.
출산 도중에 수혈받았을 땐 부작용이 없었던 것 같은데 심리적인 걸까?
얼굴과 등, 목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수혈을 중단하고 알러지 예방주사를 맞고 다시 시작했다.
-
수혈할 때 잡는 라인이 두꺼워서 제일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항생제 바늘을 넣은 상태에서 계속 유축을 하면서 손을 쓰느라 금방 바늘 자리가 멍들고 부어 아팠다.
-
젖만 안차도 좋을 것 같았다.
세 시간만 되면 단단하게 굳어오며 열이나는 가슴떄문에 남편은 조리원에서 계속 양배추 겉잎을 공수해줬고,
냉팩을 가슴과 겨드랑이에 대고 있느라 몸에 열이 나는건지 내린건지 헷갈릴때가 많았다.
결국, 주말에 출장 마사지사를 불러 젖을 짜냈다.
하루는 비가오는 날 남편이 가져다 준 양배추가 다 떨어져 가슴이 띵띵 부어올랐다.
엄마가 혜화역 근처 마트에 가서 큰 양배추 한 덩어리를 사다가 칼로 잘라 씻어주셨다.
양배추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
12월 31일, 아기가 보고싶어 울고있는 나에게 엄마가 지하 식당가에 내려가 맛있는걸 먹으며 기분전환을 하자고 하셨다.
조금만 걸어도 색전술 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저린 증상이 있기도 했고
뚝 떨어진 빈혈수치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한 발 한 발 힘을 내 내려갔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대 대한외래 지하..
그 많은 사람들을 피해 걷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마음도 힘들었다.
아기 손을 잡고, 아기를 안고 다니는 엄마들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보였다.
'크리스마스에도, 새해에도 이렇게 꿀봄이와 내가 떨어져 보내게 되는구나,, 너무 보고싶다'
바보같이 식당 앞 기둥에 머리를 쳐박고 엉엉 울었다.
-
염증수치는 조금씩 좋아지지만 하루에도 한 두번씩 오르는 고열과 전혀 기운을 못차리는 내 컨디션 때문에
전종관 교수님이 많이 고민하셨다.
분만장으로 호출되어 갔더니, 교수님이 직접 초음파를 봐주셨다. 재입원 기간 동안 처음이었다.
자궁 안에 피가 고여있다고 하시면서, 30분 후에 다시 내려올테니 무언가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소파수술이었다.
-
마취없이 하자고 하셨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간호사샘들 보기도 너무 부끄럽고 민망한데, 이 상황이 너무 원망스럽고 무서웠다.
다시는 분만의자에 수술대에 오르기 싫었다.
회음부를 수차례 봉합했다 풀고 혈종을 터뜨리고 하다보니 트라우마가 생긴 것만 같았다.
-
다시 분만의자에 누웠는데 양 다리가 덜덜덜덜 떨렸다.
어린애처럼 우는 나를 보고 간호사샘들이 많이 다독여주셨다.
왜 마취도 없이 소파수술을 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교수님을 믿었다.
간호사샘은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살짝만 긁어내실거라고 알려줬다.
교수님께서는 자궁 안에 있는 것이 고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
진통제를 맞으며 시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소리와 느껴지는 무언가들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팠다.
교수님은 내가 너무 무서워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출산 후에 계속 이어지는 이런 상황들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셨고, 안심시켜주시며 시술해주셨다.
흡입해보니 고름일거라고 생각했던 그 무언가는 그냥 피 덩어리였다고 했다.
도대체, 왜 열이 오르고 염증수치가 높은걸까..
-
회복실에 있다가 병실로 옮겨졌다.
밖에서 기다리던 엄마는 간단히 초음파만 보고 나올줄 알았던 내가 베드에 실려나오니 당황하셨다.
엄마가 나때문에 참 많이 속상해하셨을 것 같다.
자궁 내벽을 건들여 놨으니 통증은 당연한거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아팠다.
생전 느껴본적 없는 통증이었다.
출산 직후에 옆으로 돌아누울 때 장기가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다시 들었고,
무엇보다 항문이 묵직하면서 밑이 빠질 것 같았다.
특히 앉아있다가 일어나려고 할 때 자궁이 아래로 쏟아지는 것 처럼 아팠다.
회음부도 아팠지만 항문 쪽 이물감과 묵직함, 가려움, (치질없음) 밑이 빠질 것 같은 미칠듯한 통증이 지속됐다.
소변을 보려고 앉으면 소변이 나오기 직전에 요도주변에서 사람 돌게하는 찌릿함과 묵직함이 느껴져 몸을 확 움츠리게 될 정도였다.
소변이 막상 나오기 시작하면 괜찮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자궁유착과 비슷했다. 너무 최대한 자주 걸으려고 했다.
-
자궁을 긁어내는 시술 후 통증이 너무 오래 지속되자 교수님은 다시 한 번 CT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사실 교수님께서는 찍고싶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하도 배가 아프다고 하니 방법이 없었다.
결과는 역시나 정 상...
-
입원 기간 동안 이틀에 한 번 아침에 뽑아간 피로 혈액균배양검사를 했는데 동정균은 없는 걸로 나왔다.
소변 볼 때 통증으로 소변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소변 검사가 젤 짜증났다. 할 때마다 처치실에 불려가서 미니 소변줄을 꼽아 빼냈다 ㅠㅠ)
-
결국 확실한 진단명 없이 자궁내막염을 의심하면서 항생제만 주구장창 맞았다.
열은 조금씩 떨어져 어떤 날은 하루에 한 번 열이 올랐고, 그냥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정말이지 살 것 같았다.
대신 소파술 이후에 아랫배 통증이 꽤 오래 지속됐다.
앉아서 밥을 먹고싶은데 회음부부터 항문, 자궁부분이 쏟아지는 것 처럼 아파 고통스러웠다.
기분 탓인지 병원 밥 냄새만 맡으면 헛구역질이 올라와 남편이 항상 외부 음식을 사다 줬다.
-
어느날 아침 양치를 하고 혓바닥을 닦으려고 보는데, 혓바닥 색깔이 까맣게 변해있었다.
정말 그냥 검정색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본적 없는 혓바닥 색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항생제를 과다투여하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 몸이 만신창이가 돼 가는구나 싶었다.
1월, 가장 추운 겨울- 병실은 오래되어 히터는 건조하고 창문 사이사이로는 찬 바람이 스며들어왔다.
얇은 환자 복 하나만 걸치고 산후조리는 개똥이 됐다..ㅋㅋ
-
빈혈 수치를 올리기 위해 빈혈약과 오렌지주스를 같이 마셨다.
임신했을 때, 어디서 철분제와 오렌지주스를 함께 섭취하면 흡수가 잘된다고 본 것 같아서였다.
대한외래 파리크라상에서 저 오렌지주스를 7천원인가에 판다. 도둑넘들 ㅠㅠ
그나마 내가 잘 마시는게 저 주스라 엄마가 한 번에 10병씩 사다주셨다.
아직도 오렌지주스만 보면 병원 생활이 생각난다.
-
새벽마다 일어나 유축하며 슬픈젖꼭지증후군인지 아기가 보고싶어서인지
별 차도가 없는 혈액검사 결과때문인지 훌쩍거리니 옆 베드 환자분이 많이 위로해주셨다.
앞으로 나아서 집에 돌아가면 절대 못쉬니까 지금 다 쉰다고 생각하고 푹 자라고,
별거 아닌 말인데 큰 위로가 됐다.
그리고 그 말씀은 레알 백프로 현실이 됐다..ㅋㅋㅋㅋ
졸릴 때 자고 싶다 흑흑
-
2020년 1월 8일에 퇴원했다.
염증수치는 0점대, 빈혈수치는 10정도? 혈소판 수치는 58만으로 모두 다 완벽한 정상은 아니지만 정말 많이 좋아졌다.
딱 출산한 지 30일이 되는 날이었다.
병원비는 200만원 정도가 나왔다.
병실 2인실을 썼었다.
-
꿈만 같았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꿀봄이를 데리러 병원으로 가는 길이 아직도 선하다.
또 다시 열이날까, 아프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다짐하고 다짐했다. 이제 더 아프면 안되, 난 엄마니까..
'엄마가 되다니! > 룽띠 임신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산해보고 쓰는 리얼 출산준비물 리뷰 1편! (6) | 2020.05.01 |
---|---|
난산 후 다시 쓰는 출산가방 싸기 팁! (0) | 2020.03.20 |
서울대병원 유도분만 후기 4편 [#과다출혈 #혈종 #수혈 #자궁감염] (2) | 2020.03.08 |
서울대병원 유도분만 후기 3편 [#과다출혈 #혈종 #수혈 #자궁감염] (0) | 2020.03.08 |
서울대병원 유도분만 후기 2편 [#과다출혈 #혈종 #수혈 #자궁감염] (1) | 2020.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