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음부를 봉합하는 동안 몸이 너무 가뿐해서 '아 이게 자연분만의 꿀이구나' 싶었다.
전종관 교수님이 무슨 마법을 부리셨는지는 몰라도 회음부 절개도, 봉합도 통증이 없었고
초산에 유도분만, 그리고 3.82kg 아기를 낳은 것 치고는 몸이 너무 멀쩡했다.
+임신 중에도 붓기가 없었고 출산 후에도 붓기가 거의 없었다.
진통 중에 내가 그렇게 불편해하던 6인실 대신
2인실 병실에 자리가 났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 오늘 저녁에는 2인실에서 남편이랑 뭘 먹으면서 쉴까?'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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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동안 회복실에서 수액을 맞으면 경과를 지켜보고 병실로 이동하면 된다고 해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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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실에서 쉬는데 갑자기 미칠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분명 회음부 통증이다.
그 동안 많은 산모들이 회음부 통증으로 힘들어했다는 글을 봐왔기 때문에,
참아야된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전종관 교수님이 강의를 마치고 잠시 회진처럼 산모들을 보러오셨는데도 아무말 안했다.
그냥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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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점점 더 극심해지는 통증에 나는 온 몸이 덜덜덜 떨렸다.
그저 회음부가 찢어져 아픈 느낌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뭐랄까.
항문과 질 부분에 엄청난 압력이 느껴지면서 곧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아서
도저히 바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점점 통증의 강도는 심해졌고 무릎을 굽혀 브릿지 자세처럼 발바닥에 힘을 줘 엉덩이를 살짝 띄우고 있어야했다.
옆으로 살짝만 움직여도 항문이 팍!! 하고 터지면서 온 장기가 쏟아질것만 같았다.
결국 응급상황에만 누르라고 했던 호출 벨을 누르고 간호사샘이 오자
도저히 못 누워있겠다고 난리치며 일어섰다.
일어나면 절대 안된다고 했지만 누워있으니 죽을 것만 같아서 뿌리치고 일어나버렸다.
그 순간 눈 앞이 안보이면서 온 몸에 힘이 빠져 다시 침대로 고꾸라졌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위급상황인 걸 인지한 간호사샘들은 바이탈을 체크하고 분만실로 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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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및 레지던트들이 모여 웅성대던게 기억난다.
"헤마토마 인것 같은데?" "이상없어보이는데" 의견이 달랐다.
앞이 안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증상을 점차 나아졌는데 항문과 회음부 통증? 통증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그 죽을듯한 압력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한 남자 당직 의사가 질 내부를 확인하더니 특정 부분을 꾹 누르며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울부짖었다 제발 누르지 말아달라고 했다. 혈종이었다.
그 의사는 회음부 꼬맨 곳을 풀고, 그 혈종을 터뜨려야 통증이 가라앉을거라고 했다.
대신 전종관 교수님께 연락을 취해보고 해야한다고_
아무나 제발 터뜨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레지던트샘들은 계속 카톡으로 교수님과 연락을 취하려했고 나는 이러다 혼절하겠구나 싶었다.
그 시간이 몇 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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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수님을 응급으로 부를지, 의논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너무 아파하니 그 남자 의사가 혈종을 터뜨리기로 했고 쌩으로 회음부 봉합을 풀고 보니
질 안쪽에 정말 혈종이 있다고 했다.
손으로 막 눌러보면서 아프냐고 하는데 정말 분만 통증만큼 괴로웠고 정말 .. 욕이 절로 나왔다.
결국 혈종을 남자 의사가 터뜨렸고 그 순간 통증이 완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통증 완화와 함께 엄청난 양의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수도꼭지 틀어놓은 느낌? 아니 내 다리 사이에 큰 폭포가 생긴 느낌이었다.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이렇게 죽을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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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즈를 넣어 지혈을 하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혈이 되지 않았고 수혈팩은 늘어났다.
출혈이 갑작스럽게 많다보니 수액 바늘과 수혈바늘이 뒤섞였고, 베드를 계속 옮겨 눕다보니 주사바늘이 꺾여 팔에 피범벅이었다.
그 사이 교수님이 오셨고 나는 수면마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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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교수님은 안계시고 소변 줄이 끼워져있었다. 하 이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회음부를 다시 꼬매고 주변 정리를 하는 분위기였다.
남자 의사가 이제 괜찮지 않냐고 물어봤다. 혈종 터뜨린 곳을 꼬매고 회음부도 다시 봉합했다고. 좋아질거라고.
그런데 정신이 돌아오면서 점점 아까와 똑같은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죽고싶었다.
나는 다시 울부짖으면서 똑같이 아프다고 소리질렀고 당황한 의료진은 다시 회음부 실밥을 풀기 시작했다.
정말 혈종이 생기는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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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어보니 혈종이 또 생겼다고 했다. 의료진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교수님도 가버리셨고 나는 너무 무서워서 졸도하기 직전이었다.
교수님에게 다시 연락을 했고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CT를 찍네 마네 하다가 결국 색전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전종관 교수님의 선택이었다.
자궁 색전술은 다리 동맥을 통해 자궁의 출혈부위를 찾아 막는 시술이다.
영상의학과로 이송되어 밤 11시에 바로 진행했고 색전술이 뭔지도 모른채 덜덜덜 떨며 시술을 받았다.
영상의학과 교수님들이 두분이 시술해주셨다.
말이 시술이지 너무 무서웠다.
추워서인지 두려움때문인지 온 몸이 미친듯이 떨렸고,
갑자기 아랫배가 죽을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색전술을 받으면 원래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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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전술을 받고 병실에 올라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
그 시간까지 남편과 우리 부모님, 그리고 시어머니가 대기실에서 앉지도 못하시고 서서 발을 구르고 계셨다. 눈물이 났다.
분만실로 들어가니 전종관 교수님이 다시 와 계셨고, 색전술 받은 부위가 지혈이 된 걸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회음부를 꼬맸다.
너무너무 속상했다..
색전술 받은 다리는 구부리지 말고 3시간 동안 모래주머니 올리고 누워있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모든게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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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정도 더 입원하고 아기 데리고 조리원으로 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준비하면서 간호사샘이 와서 열을 쟀는데 약간 미열이 떴다.
주치의 선생님은 미열이 약간 맘에 걸리긴하지만,
항생제와 철분제를 챙겨주겠다고 일단 퇴원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이게 큰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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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 14일 내내 체온은 37.5-39 도를 넘나들었다. 조리원 천국이 아니라 정말 내겐 지옥이었다.
기본적으로 36도대로는 내려간 적이 없고, 37.4도 이상이 되면서부터 몸살기운과 무기력감이 시작됐다.
37.5도가 넘어가면 오한이 점점 더 심해져 아랫입술이 덜덜 떨릴정도로 몸 상태가 안좋아지고
침대에 고꾸라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열이 난다고 조리원 원장님께 말씀드리니 처음에는 젖몸살을 의심하셨다. 물론 가슴도 단단하고 젖이 차 아팠다.
하지만 모유수유 원장님은 병원에서 퇴원하기 직전부터 미열이 났다는 점과 출산 후 여러 이벤트들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젖몸살이 아닐 수도 있다고 걱정하셨다.
(젖몸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열이었고 오래 지속됐다. 유축을 해도 열이 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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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음부는 여러번의 시술로 부어 아프고 가슴은 양 팔을 조금도 들어올릴 수 없게 굳었다.
온몸에 열이나는데 24시간을 3시간 단위로 쪼개 하루 8번씩 유축을 해야했다.
정말이지 하루종일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다 이틀 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남편과 서울대 응급실에 갔다.
조리원은 강남이었고 아기도 있는데 남편과 둘이 응급실까지 간 건,
정. 말. 많. 이. 아. 파. 서. 였. 다...
조리원에서 출발할 때는 38.2도 정도였는데 나가서 찬 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다 보니
응급실에서는 37.6도 정도가 나왔다. 거기서는 미열로 봤다.
두 시간을 응급실 의자에 기대 기다렸다가 진료를 봤다.
베드에 눕게한 뒤 배 이곳 저곳을 눌러봤다. 아프지 않았다.
응급의학과 의사도 젖몸살 같다고 했다.
가슴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했고 보더니 유선염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며 타이레놀을 처방해줬다.
이유는 복통이나 구토 등의 다른 증상이 없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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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왕복 두 시간, 총 네 시간을 허비하며 다녀온 병원에서 타이레놀만 처방받아 조리원으로 돌아왔고
또 고열 패턴은 반복됐다.
정말 죽고싶었다. 모자동실 시간에도 열이나면 침대에 쓰러져 일어날 수 없었다.
강력한 몸살기가 시작되면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온 몸이 부서지는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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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다 전종관 교수님 외래에 다녀왔다.
초음파 결과 별거 안보인다고 하셨다.
외래 가기 하루 이틀 전 부터 오로 냄새가 심해지는 것 같아 예진때 이야기했다.
퇴원 후 계속 열이 났다고도 했고 응급실에 왔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냥 지켜보자는 의견이었던가.. 어떤 약도 처방도 없었다.
폭풍 검색을 하면서 '산욕열'이라는 걸 찾아냈는데 내 증상과 너무 비슷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출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염으로 고열이 나는 건데,
내가 교수님께 피검사에서 염증수치는 안나오냐고 했더니 빈혈 수치만 나온다고 했다.
빈혈이 심한 편이라고 철분제 남은거 잘 챙겨먹으라고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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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에 왔는데 또 열이 났다.
내가 내 몸을 아는데 너무 이상했다. 출산 후 오는 일반적인 증상으로 보기는 힘들었고,
박경숙 원장님이 매일 아침마다 라운딩 때 마사지를 해주셔서 가슴은 편안한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기도 제대로 한 번 안아볼 수 없었다. 일어설 힘 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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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 원장님들과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무척 많이 걱정해주셨다.
밤낮으로 체온 재러 와주시고, 안부를 물어보셨다.
박경숙 원장님은 근처 내과에 가서 영양제나 수액이라도 맞고 오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혼자서는 멀리 걸어 나갈 힘이 없어 바로 건너편 건물 오래된 내과에 갔다.
열이 나서 함부로 처방이 어렵다며 포도당만 맞고 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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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 토요일 남편에게 죽을 것 같다고 차병원에 가자고 했다.
심성신 교수님 진료가 배정됐고 혈액검사 억지로 해달라고해서 한 결과 염증수치 8 빈혈 9 매우 안좋게 나왔다.
깨끗한 상태라면 염증 수치가 0-1 사이가 나와야하는데 너무 높은 수치였다.
오로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항생제 먹고 4일 뒤에 오라고 했다.
사실 서울대에서 미열때문에 혹시나 챙겨준 항생제는 초유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안먹었는데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 열심히 챙겨먹었다. 그치만 약을 먹을때 뿐 약발이 떨어지면 또 열이났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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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뒤 2019년 크리스마스 이브
또 열이 난채로 차병원에 갔고 피검사를 했는데 항생제를 복용해서인지 염증은 5로 낮아졌지만 빈혈 8 이 나왔다.
낮아지긴 했지만 정상은 아닌 염증수치..
교수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지난번 검사에서 주의 깊게 안봤는데 혈소판 수치가 99만 이었고, 오늘은 100만이 넘었다고..
알아먹기 어려운 의학용어 몇 가지를 언급하시고는 혈소판 증가증이 지속되면 혈전이 생겨 드문 경우,
혈관을 막아 아주 위중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날은 엄마와 함께 갔는데, 결국 진료실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휴지를 챙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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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신 교수님은 최대한 빨리 분만했던 서울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은 크리스마스 그리고 주말이 이어졌고 의료협진센터에서 서울대병원에 전화를 넣었음에도,
가장 빠른 외래 날짜가 10일 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으로, 인자하시던 전종관교수님도 서울대학교 병원도
너무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다.
아무도 이렇게 엉망이 된 내 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공포감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혼자 조리원에 남겨져있는 아기가 .. 너무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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